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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동행한 45년이란 세월은

*연이의 일기

by 김용자 2007. 9. 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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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밤에는 백살하도고 세살이나 더 되신

    할머니 장례식장에 다녀왔지.

    이천에 있는 장례식에 ..

    그러니까 삼년전 할머니 백수잔치를 하실 때에도 꼬장꼬장하셨어

    하루종일 즐거워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동네에선 큰 잔치가 벌어지고 난 할머니 드시라고 아주 굵은

    물렁한 복숭아를 한 박스 사 가지고 갔지..

     

    근데 며칠전서 부터 물 한모금으로 간신히 목만 축이신다고 하셨어

    그러시기를 5일 된건가봐

     

    칠십다섯된 아드님이 할머니 곁을 지키고 계셨지.

    할머니께 향을 피워드리고 인사를 드리고 그리고 할머니 아드님께

    인사를 드렸지...슬픔은 아니야 이젠 당신이 가야할 곳으로 갔다고

    ...그러며 위로를 말씀을 드리고...그리고 할머니 며느님을 찾았지.

     

    그 며느님은 안계셨어 작년에 며느님 고희잔치 하면서

    내내 눈물흘리시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 눈물에 의미를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난 알것 같아..

    몸이 자꾸만 부어 집에 가서 잠시 누워있을려 들어가셨다봐..

     

    시집와서 함께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근 사십오년이란 세월이

    누구의 인생도 아니였던거지

    시어머니 며느리 그리고 아드님이 함께한 세사람이 동행한

    인생의 걸음걸이였을것 같아..

     

    요즘 세대야 시어머니가 계시던 안계시던..조금만의 구속은 받겠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 며느리들은

    복종.....그리고 순종만이 전부인것을..

     

    어디를 가든 ...어머니 점심 알아서 드세요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울 어머니 굶을것 같아 꼭 다시 들어와 차려드려야 했던

    어디 하룻밤이라도 세워야 할곳을 다녀와야 하면

    왠지 모르게 가시밭같은 그런 곳이였다는 것을..

    다녀와서도 웬지 마음이 편치 못하고 꼭 죄진것 처럼 그렇게 살았다는 걸....

     

    나도 그랬어

    처음에 어디 외출을 해도 점심엔 다시 들어와 아버지랑 함께 점심먹고

    다시 볼일을 보러나가고 

    나중엔 좀 약은 행동을 했지

     

    짜장면집 아저씨가 나를 많이 도와 주셨어

    워낙 울 아버지는 짜장면을 좋아하시기에 ...

     

    "아저씨 나 볼일을 다 못봐서

    울 집에 짜장면 한그릇만 ...그리고 알지  울 아버지 귀 잘 안들리는거

    아버지 깨우고 짜장면 가위로 좀 짤라 드리고 가셔"

     

    그러면 짜장면집 아저씬 내게

     

    "그래 알았어 일 보고 들어와" 라고

    참 고마우신 분이셨지

     

    그렇게 살아오듯

    지금에 울 부부들 툭 하면 이혼한다고

    조금만 맘에 안들면 입버릇처럼 하지만

     

    조금만  참고....

    조금만 양보하면

    그렇게 까진 안해도 될것같은..

    지난 울 어머니 세대처럼 참고 견디며 살진 않아도

    그런것에 반에 반만 닮아도 우리에 삶은 훨 수월해 지지 않을 까

    싶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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