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만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김용자
터벅터벅 산등성이를 넘어옵니다.
찾아가는 발걸음은 힘이 들어있지만
돌아오는 길은 왠지 김 빠진 맥주처럼
힘이 없습니다..
휭하니 산등성이에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이럴땐이럴 땐 이럴 땐
정말 담배라도 피워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랬지요 그래야만 하는 건지 알았습니다.
국수 암반에 홍두깨로 밀가루를 밀던 엄마가
저것 때문에 날아갈 수도 없다고 내게 속풀이를
하시면 그냥 난 듣고 있어야만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 옆에서
엄마는 사과 한 알 껍질을 벗기시면
남동생은 알맹이만 먹고 난 껍질만 먹어야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때때옷을 사 주시면
그냥 그날 입어야 하는 건 줄만 알고
입었다 벗었다 하기를 몇 날 며칠을 하고
젤로 멋진 옷을 입은 것처럼 동무들한테 자랑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일곱 살에 남동생이 생기고
이처럼 얼음이 꽁꽁 언 날에도 동생 기저귀를
냇가로 가져가 빨아가지고 오면 엄마는 애처로워
바라봐도 난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잘못했다고 엄마가 회초리를 들으면
종아리가 쭉쭉 금이가고 멍이 들어도
그냥 꼿꼿이 서서 맞아야만 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지나고 나니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것은 나를 만들어 준 것들입니다
넘에게 싫은 소리 할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고
넘에게 대들며 반항할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지만
지나고 나니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내게 다 약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내게 다 영양제 같은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요...
엄마랑 목삼겹을 구워 안주삼아
이슬이 한잔 두 잔 세 잔... 을 마시며
지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긴 웃었지만
왜인지 자꾸만 마음이 쏴해 집니다.
처음으로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엄마라는 첫 단어를 배운 말을
여즉 여즉 잘 불러오고 있었지만
어느 날 언제 갑자기
그 엄마라는 단어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주방 청소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돌아오며.... 다시 나를 돌아봤지요
그래 그렇게 자란 내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는 것을요
요즘은 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 결과들이 내겐 다 덕이 되고 있음을 알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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