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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기억속의 저편에는

by 김용자 2007. 11. 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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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김용자

 

터벅터벅 산등성이를 넘어옵니다.

찾아가는 발걸음은 힘이 들어있지만

돌아오는 길은 왠지 김 빠진 맥주처럼

힘이 없습니다..

 

휭하니 산등성이에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이럴땐이럴 땐 이럴 땐

정말 담배라도 피워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랬지요 그래야만 하는 건지 알았습니다.

 

국수 암반에 홍두깨로 밀가루를 밀던 엄마가

저것 때문에 날아갈 수도 없다고 내게 속풀이를

하시면 그냥 난 듣고 있어야만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 옆에서

엄마는 사과 한 알 껍질을 벗기시면

남동생은 알맹이만 먹고 난 껍질만 먹어야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때때옷을 사 주시면

그냥 그날 입어야 하는 건 줄만 알고

입었다 벗었다 하기를 몇 날 며칠을 하고

젤로 멋진 옷을 입은 것처럼 동무들한테 자랑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일곱 살에 남동생이 생기고

이처럼 얼음이 꽁꽁 언 날에도 동생 기저귀를

냇가로 가져가 빨아가지고 오면 엄마는 애처로워

바라봐도 난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잘못했다고 엄마가 회초리를 들으면

종아리가 쭉쭉 금이가고 멍이 들어도

그냥 꼿꼿이 서서 맞아야만 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지나고 나니

지나고 나니

그 모든 것은 나를 만들어 준 것들입니다

 

넘에게 싫은 소리 할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고

넘에게 대들며 반항할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지만

 

지나고 나니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내게 다 약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내게 다 영양제 같은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요...

 

 

 

엄마랑 목삼겹을 구워 안주삼아

이슬이 한잔 두 잔 세 잔... 을 마시며

지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긴 웃었지만

왜인지 자꾸만 마음이 쏴해 집니다.

처음으로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엄마라는 첫 단어를 배운 말을

여즉 여즉 잘 불러오고 있었지만

어느 날 언제 갑자기

그 엄마라는 단어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주방 청소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돌아오며.... 다시 나를 돌아봤지요

 

그래 그렇게 자란 내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는 것을요

요즘은 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 결과들이 내겐 다 덕이 되고 있음을 알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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