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이 엄마 품속처럼 아늑하다.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은 홀로 사색에 잠겨있다.
노트북위에 올려놓은 손은 바르르 떨고 있지만 자판 두드리는 데는 지장 없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왕왕 들리고 구ᄃᆖᆯ장은 따뜻하다. 티브는 혼자 솔로 무대를 펼치고
티브 보던 남편은 코 골고 있는 시간 55분 전 영시이다.
낮에 올라왔던 대화상자들을 들여다보다 문득 장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어제 사촌 형님이
젊은 나이임에도 전에 걸렸던 암세포가 전이가 되어 돌아가셔서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무언
가에 홀린 듯 길을 한 시간이나 헤매다 돌아왔다. 남편은 돌아가신 고모의 선처였을 거야 바로
왔으면 사고가 났을지도라며 위안을 삼았다. 살아생전에 편안하게 지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로 늘어난다는 말이 있듯 우리는 항상
예부터 궂은일은 더 합동심이 강하였다.
동네 아주 가난하게 살던 선자네집은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자식들은 줄줄이
일곱 남매를 두었다. 할머니도 함께 사셨는데 돌아가셨다고 동네에 말이 금세 퍼지니 이 집
저 집에서 밀가루 한 바가지 밭에 있는 부추도 베어 오고 호박도 따오고 하더니 솥뚜껑 걸어놓고
부쳐내 장례식은 그렇게 치렀다.. 갑자기 일어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농번기라 바쁘지만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가난한 집이라 난처해하는 모습 보기 전에 동네분들은 그렇게 먼저 생각해
들고 갔던 것이다. 마침 내일처럼 나누는 정을 어려서 보고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은 엄마가
그렇게 하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렇듯 우리들은 정이 참 많고 신명 흥이 많은 민족국가이다. 장례문화도 많이 변했다. 꽃밭에도 주검을 안치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못다 한 이야기 말하고 그렇게 하여 불 속으로 들어가 재로 되어 나오는 슬픔, 허무함, 인생 덧 없이 느껴져 아옹다옹 살지 말게나 하며 돌아서는 게 우리네이다.
그렇게 다짐한 날이 며칠이나 가는가 삶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라고 다시 반문을 한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그럼에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만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 우린 자각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온화하게 마음에 꽃을 피워야 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 많은 것보다 따스한 온기를 넣어줘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 저마다 다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며 사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