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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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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자 2023. 12. 1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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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부제목물장구

 

 작은 소학교 풍금소리가 퍼진다.

나무들은 팔랑팔랑 잎사귀를 흔들고 토끼는 앞발을 세우고 장단을 맞춘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예쁜 학교이다.

여름날 물이 깊은 냇가에서 물장구 놀이를 하고 돌아왔다.

 

 넓은 들판 조그만 예배당에서 땡그랑 땡그랑종소리가 들린다.

옥이는 일요일마다 큰 산 고개를 넘어 예배당에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영미와 만나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기도를 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름 날,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옥이가 깊은 물에 들어가 나오질 못했다.

물은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아이들은 바라만 보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웅성거린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옥이를 본 영미는 겁도 없이 뛰어 들어가 팔을 뻗쳐 물 밖으로 끌어내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고 인공호흡을 시작하였다.

다행이도 물을 많이 먹지는 않았는지 슬그머니 눈을 떴다.

 

 버들게지가 눈뜨고 피어나는 화사한 봄은 영미를 불러낸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집안에만 있던 영미 잠자고 있던 온갖 세포들을 깨우려 제천닷새장에 갔다.

갑자기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나서 조상님이 도를 많이 닦아 복이 많으시네요 하더니 조용한 곳에서 커피한잔 하자며 선의를 베푸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거절했다. 재래 장터중 제일 크다는 모란장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언 듯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녀, 오래전에 친구 옥이랑 닮았다. 꼭 옥이 같아서 따라가다가

혹시 당금초등학교 다닌 옥이 아닌 가요

예 혹 영미

둘이는 단숨에 알아보고 서로 얼싸안았다. 길모퉁이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서 옛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둘의 만남은 삼십년 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울까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옥이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영미를 초대했다. 소역 근처 그리 크지 않은 건물 지하에 작은 책상하나 놓고 앉아있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옥이는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자신은 너무 좋은 하느님을 만나 행복하다며 내게 권유한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아직도 잘 다니고 있나 보다하고 영미는 생각하며 돌아오면서 사회에서 잘 알고 있는 공 집단은 이미 사이비라고 손가락 받고 있는 곳에 들어가지는 않았겠지 아닐거야라고

 

 두 번째 만남이 있던 날 이야기의 주제는 점점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평범한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 생소한 개념을 열성으로 토로를 한다.

영미는 불교이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현실을 생각한다. 예배당에 다니던 그 기억들은 모두 지워졌다. 엄마 따라 간 구인사를 다녔고 지금은 집 근처에서 걸어서 한 시간 쯤 가는 절에 다닌다.

절에 가는 날은 초파일이나 가서 사뭇 초파일 신도라 자칭하며 가고 싶을 때나 찾는 절 마당에는 항상 누군가가 기다리는 설렘으로 다녀온다.

  종교라는 마음속에 절대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영미는 많이 변해있는 친구의 말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옥이의 그간 살아온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 영미는 넌지시 물어본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옥이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다.

나는 어려서 할머니가 키워주셨지. 엄마는 집나가고 한해 두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어. 항상 아침밥 해먹고 학교가고 집에 오면 집안 살림하기도 힘들었어. 동생들이 워낙 많아서한숨을 내 쉬었다.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간다.

그녀의 사정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많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요소가 되어 있었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한다.

  “ 중학교 졸업하고 회사를 다녔어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좋은 날도 얼마 못 갔지, 아들 초등 5학년 되던 해 남편의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하나님이 데러갔어.”

참 세상은 공평하지도 못하다. 힘들게 살아온 지난 과거 보상이라도 해 주듯 결혼생활이라도 행복하게 살게 해 주지 그것마저도 행복이라는 것을 앗아 가는 걸까

아들하고 살아갈 궁리를 하는데 친절하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지.”

속마음을 열어놓는 말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열지 않았던 문고리 하나가 풀린 듯하다

  사이비 단체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는 삶이 척박 하다거나 외로운 사람들을 공격하며 개인들은 거의 집단생활을 하는 종교단체로 들어간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들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정을 나눠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취약한 점을 이용해서 세뇌교육을 시키는 사람들에 의해 점점 빠져들어 헤어나기조차 힘들어 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옥이 이야기인 즉 그들이 노리는 목적에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였다.

 

  영미는 한참 친구의 말을 듣다 이야기는 서글프고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 아프기도 하고 저려오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한다.

친구의 말은 얼마든지 이해는 할 수 있단다. 그간 모르고 살아 온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나도 종교를 가지고 있긴 해 부처님이 나를 도와주겠어. 내가 울며불며 매달린다고 그래 걱정 말아라 내가 해결해 줄께 라고하지는 않아, 하지만 우리 인간은 너무나 부족한 게 많아서 신이라는 존재한테 매달리는 게지, 난 이렇게 해 내 몸이 지칠 대로 신 앞에서 기도를 하지 108배를 하고 또 하고 그리고 나면 뭔가를 이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문제 해결이 다 된 것처럼 홀연 해지더라 친구야

  옥이는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영미는 자신이 믿는 믿음에 대한 반대 생각을 고집하고 자신이 믿는 믿음만 옳다고 주장할까 내심 걱정하며 이야기를 했는데 옥이는 잘 받아주었다. 영미는 속으로 기뻤다. 다시 옛 친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새로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난 것 같아 웃음으로 씽긋 보여주고 있었다.

옥이는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렇지 친구야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겨 낼 힘조차 없고 감당해야 할 모든 것들이 어둠속 터널처럼 캄캄해서 무서웠어. 아들 녀석이랑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많았지, 그들이 내게 건네는 그 말들은 내가 마치 뭔가를 다 해 낼 수 있을 것 같이 말을 해 솔깃 해진거야

그 동안 고생을 많이 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미안

지금은 괜찮아졌어. 아들도 다 크고 장가만 보내면 될 것 같아

옥이는 그날 많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 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려서 다녔던 교회목사님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후로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당금교회 목사님은 성인에 가까울 만큼 멋진 목사님이셨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동네일에 봉사하시며 얼마 들어오지 않는 헌금으로 생활한다는 것조차 어려운데 농사일도 하고 신도들은 농사지은 곡식들을 나눠서 가져다 드리기도 한 아주 작은 시골 촌 동네 목사님을 우리는 많이 존경했다. 옥이는 스스로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사이비 종교였음을 알게 되어 다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수영장으로 갔다.

어릴 때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옥이, 아프게 겪었던 상처를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생각했다. 물만 보면 무섭다는 친구 옆에 내가 있으니 우리 걱정 말고 신나게 즐겨보자고 생각해 낸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영미 옥이가 종교에서 벗어난 고마움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옥이는 생각보다 활달하고 잘 견뎌내 주고 있다. 얼굴에 근심도 사라지고 어릴 때 처음 만나 웃던 작은 계집아이로 돌아오고 있다.

얼굴이 하얗고 키는 조그마한 맨 앞자리에 서서 책보를 들고 서 있던 아이, 씨름 잘하는 사내아이들 개구리 잡아 몸보신 시킨다고 논에 가서 서슴없이 통통한 개구리 잡아와, 숙직실 연탄불에 구워 은근슬쩍 영미한테 다리 한쪽 던져주던 아이, 그 아이가 엄마가 되어 영미 앞에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그래 웃는 거야

웃으니까 참 예뻐

하하하 정말 예뻐

응 예뻐 다시 시집가도 될 것 같아

호스피스 병동의 삶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분들이 한결같이 한다는 말씀이

많이 웃지를 못했다고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우리 앞으로 많이 아주 많이 웃고 살자.”

   두 친구는 새로운 공부에 도전했다. 그 모진 남에 틀에 박혀 산 수동적인 삶이 아닌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살아갈려 한다. 옥이는 종교에서 벗어나 아주 소박하고 조그만 교회를 찾아 진실 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영미와 옥이는 둘이 나란히 손잡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 벌써 눈앞에 다가온다. 워낙 아기들을 좋아하는 옥이는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해 새로운 나날에 행복해 하며 꿈을 꾼다. 둘이 약속한 많이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서로 믿고 기대고 의지하며 대립되는 종교를 가졌지만 지난 우정은 변함없이 마음속에서 간직되고 유지되어 있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마주 보고 웃는다.

둘이는 서로 손잡고 수영장 안을 걷는다. 물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나 보다 그래 부딪치는 거야 그래야 더 성장 할 수 있는 거야 영미는 옥이 손을 꼭 잡아준다. 옥이는 활짝 웃으며 신바람 나게 물장구를 친다. 하얀 소용돌이가 일어나 멀리 멀리 동그랗게 퍼져 나간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에는 꽃들이 활짝 핀 꽃길이리라.

멀리서 풍금 소리가 들리는 오후 계집아이들은 물장구 놀이에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