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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을 맞이하며 공주놀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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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자 2023. 2. 1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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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에

 

 

정월 스무 하루아침

따르릉 전화벨 소리 용희야 미역국은 먹었냐

여지없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년 째 들리지 않습니다.

 

 

엄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내일 아침 늦게까지 푹 자

알았다 알았어

딸은 회사 퇴근하면서 미역 쇠고기 불고깃감을 사서 손에 들고 들어옵니다

못 본 척하다가도 잔소리가 시작되지요. 지난번에 네 생일 때 반 남겨놓은 거 그걸로 끓이면 되는 데라고 물어보고 사 오지 그랬냐고 합니다

남편이랑 딸 그리고 저랑은 보름 주기로 생일이 다가옵니다.

잠이 오질 않아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지요.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는 옛 속담이 꼭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58세에 시작한 대학생활이 너무 재미있지요. 벌써 시작이 반이라고 3학년이 되었어요

늦게 놀다 들어와선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고기를 조리해 한 상 차려놓았네요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몇 년째 딸이 만들어 주는 아침 생일상을 맞이합니다

아침을 정성으로 먹습니다.

같이 놀다가 다시 또 딸은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거실 창에 풍선을 달고 은박지 주렁주렁 달고 글씨를 써넣네요

그리곤 노란 후리지아를 앞에 놓습니다

엄마 후리지아 꽃말은 다시 시작이래요

엄마는 앞자리에 6자가 붙었으니 다시 시작이네!” 얼마 전에 등단한 축하까지 문구를 넣어 리본 목걸이를 달아줍니다

생전 귀걸이를 안 해본 내 귀에 공주들이 하는 귀걸이를 달고 여왕이 쓰는 왕관을 머리에 쓰고 아기들이 좋아하는 공주 인형이 하는 목걸이를 목에 끼우고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어머니 오늘 캐릭터는 공주 콘셉트입니다”라며” 치장을 하네요

 

딸 첫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학교에 들여보내놓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 하다가 하교할 시간 즘에 또 기다리니다

가방은 바닥에 닿고 키가 작은 얼굴이 하얀 딸이 맨 앞에 서서 나오는 거예요.. 생일이 1월 말이라 큰 아이들 하고는 근 일 년 차이가 나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을 뵈러 갔더니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말씀하십니다

보미 어머니 저는 보미 어머니가 엄청난 멋쟁이신 줄 알았어요. “

선생님 무슨 말씀인가요 ““ 하고 되물으니 선생님께서 그림 한 장을 가지고 오시면서

저희 미술 시간에 가족들 그려보라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보세요 보미가 그린 그림입니다

귀걸이에 예쁜 머리핀에 목걸이 드레스 하이힐을 신은 엄마를 그려놓았지요

엄마라기보단 평상시 딸이 좋아하던 그림인 것 같은데 선생님은 엄마라 생각하신 듯

그냥 하하 웃으며 넘겼습니다.

사실 난 그때만 해도 밭에서 일하는 촌 아줌마였습니다. 얼굴은 햇빛에 그슬러 새까맣고 화장이라야 기초화장품 외에는 입술도 잘 바르지도 않았지요

삼십 대 초반의 엄마를 그렇게 멋쟁이 엄마를 그려놓았던 딸이 삼십 년이 넘은 지금 그때 그 모습 그대로를 실현에 옮긴 모습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꼬맹이처럼 다 큰 숙녀가 된 딸이 그리 보이니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울까요?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며 엄마가 딸 요렇게 서봐 저렇게 서봐하며 찍어주던 그 자세를 엄마인 내가 똑같이 하고 있었어요

공주 놀이도하고 케이크에 큰 초 여섯 개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릅니다.

 

결혼생활 33년 돌아보면 그래도 힘든 날보다 좋은 날이 훨씬 많았지요

늘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난 왜 이리 복이 많은 거야

만나는 인연마다 내게 많은 도움과 격려 배려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니 항상 감사하고

그 인연 오래도록 간직하니 더 감사하지요

사는 것 이웃하고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 그것은 별거 아니지요

조금만 양보하고 아주 조금만 배려하고 살아도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옛말에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했는데 콩 한쪽은 못 나누어 먹어도 말이라도 한마디 예쁘게 한다면 참 좋은 이웃사촌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사람과 동물과 다른 한 가지 다른 점은 사람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동물들의 세계만 봐도 새끼가 강자한테 물러가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며 울음소리를 낼 때 어미는 멀리서 바라보고 울고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세상은 점점 변해가고 있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요

밥상머리 교육입니다.

딸 초등학교 다닐 때 학부모 회의 시간에 나이가 지긋한 교감 선생님 게서는 항상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항상 눈높이를 맞추어 부모가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그 아이들 역시 부모를 닮아 올바르게 잘 자라 나라의 기둥이 되고 희망이 되겠지요

나는 또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앞으로 내가 어쩌다 어른이 아닌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것을요

늦깎이 대학생이라 공부에 열중하면서 다시 아니 아주 생소한 과목에 부딪히기도 하고

교양과목인 철학 과목에서 많은 인생과 내가 나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가도 생각하고 하루 한 편의 현대 시나 고전 시를 낭독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하루 시간도 모자라 허둥대는 내 모습이 진정 멋지고 아름다운 나인가에 박수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내가 젤로 잘한 것은 33년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새벽밥을 했다는 겁니다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 아침밥을 꼭 먹고 출근하는 남편 아침상을 차리는 거지요

오늘

60번째 맞이한 생일 엄마가 몹시도 그리웠습니다.

항상 옆에 계실 때는 꽃 한 다발 사 들고 가 나 이 세상에 나오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큰절 올렸던 울 엄마가 보고 싶어 찔끔 가슴이 미어졌지요.. 엄마를 소재로 쓴 시를 엄마 묘지 앞에 올리고 큰절을 올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