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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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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자 2022. 11. 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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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친구)

고향 까마귀

 

제천에서 구불구불 장재를 넘어 오십여 리를 곡예를 하듯 흙먼지가 펄펄 날리는 산 언덕을 오르면 먼 소백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늘과 맞닿아 소근덕 거린다

언덕을 내려가니 조그만 장터가 보이고 그 장터에는 소 네댓 마리가 큰 눈을 껌뻑이며

새 주인을 기다린다. 시골 버스 안은 시끌벅젓이기 시작한다. 콩 시세가 별로 안좋아

보따리 보따리 안고 버스에 오르시는 어르신들은 웃음과 그늘이 절반이다. 버스의 종착역에 내려 코스모스가 곱게 핀 누런 들판을 걷는다

골말에는 열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우물 안에는 내 얼굴 금옥이 얼굴이 물결 따라 일그러졌다 펴졌다 한다. 금옥이는 재미있는지 두레박으로 더 장난을 치며 노는데 금옥이 엄마가 물 길러 나오셨다. 금옥이 어머니는 동네 일이며 부녀회장 학교 회장을 역임하시며 억척이시다.

 

까마귀 서너 마리가 몇 년째 몰려다니며 울어댄다

옛말에 고향이 그리울 땐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 하듯 내겐 금옥이 친구가 고향 까마귀다,, 이따금 한 번씩 거나하게 술 한잔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려 보면 금옥이 전화라 늦은 밤에는 아예 벨소리를 꺼놓기도 한다.

하룻밤에는 밤새도록 잠도 안 자고 전화를 돌렸는지 아침 카톡방이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서 이 말 저 말이 툭툭 튀어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또 사고를 쳤나 보다 하고 다들 그렇게 말은 해도 미워하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한다.

 

우리 집이랑 작은 텃밭 사이로 나란히 한 옆집 금옥이네는 큰 감나무 한그루가 밭 가장자리에 서 있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집 지붕 위에 나뭇가지가 뻗어 늦가을이면 지붕 위로 나뭇잎이 떨어져 엄마는 초가지붕이 썩는다고 성화셨다.

그런 어린 나는 그 감나무 아래 멍석을 깔고 앉아 학교에서 빌려온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일으며 재미있어했고 감나무 꽃을 먹고 실에 퀘어 목걸이도 만들곤 했다

여름날 누가 먼저라 할까 진소 골에 벌거숭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훌러덩 벗어던지고 물텅벙이가 되어 놀이가 시작되었다. 심술궂은 해님이 슬쩍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리면 입술이 시퍼런 벌거숭이들은 오들오들 떨며 하늘만 쳐다보다 넓적한 바위 위에 배를 쭈우욱 깔고 주문을 외기도 한 추억 속에 벌거숭이들이다.

비가 주르륵 내리는 날 금옥이는 비료포대를 쓰고 학교에 가는데 뒤따라 가며 포대에 쓰인 글을 열심히 읽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소요 비료였다..

집에 와 언니한테 이야기하니 소요 비료가 아닌 요소 비료라고 제대로 읽어보라고 했다 금옥이는 반장을 한다. 엄마의 치맛바람도 있거니와 아주 똘똘한 학급반에서는 잘하는 편에 속한 친구다.

선생님께서 내일은 농촌 일손 돕기 나간다고 해서 아침 일찍 나서니 금옥이네 보리밭에 보리를 베러 간다고 한다.

힘센 종수가 노란 주전자에 물 가득 들고 언덕에 오르니 노란 보리 이삭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금옥이 엄마는 동네 낫자루를 다 빌려오셨는지 낫은 즐비하게 나란히 앉아있다. 하나씩 들고 보리를 베기 시작한다. 참으로 일들을 잘한다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들은 그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힘센 종수는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아주 큰 오라버니처럼 말을 하기도 했다.

늘 종수 눈에는 내가 아주 작은 아이처럼 보였을까 몇 년 전에 종수는 하늘나라로 도망쳤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모두 냇물로 데려가 물텀벙 놀이를 하라고 하셨다.

더우니까 금옥이 엄마가 내준 미숫가루는 그야말로 우리에겐 덧없는 맛이었다..

겨울날 혼자 불놀이를 냇가에서 했다. 엄마 몰래 성냥갑을 들고나가 냇가 둑에서 살짝 그었더니 불이 확 퍼져나가기 시작하는데 겁이 덜컥 났다..

금옥이 아버지가 지나가시다가 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불을 함께 꺼 주시고는 그냥 가시던 길을 가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때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메뚜기 잡기를 함께 하던 친구. 어느 날 인가서부터 내외를 하게 되었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서부터 소식은 뜸해졌다.

각자의 길로 가 명절이나 돼야 어른들이 하시는 소식을 들었다.

 

어른이 되고 각자의 길을 걷고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는 고향 지킴이가 되어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간간히 살펴 드리고 고향 소식을 잘 전해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하루는 인사를 하고 슬쩍 스치는데 허리춤이 딱딱해 왜 그런가 했더니 동네 어르신 지붕 위에 올라가 고쳐주다가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다고 한다. 내가 딱히 해 줄 말은 조심하지라고 격려에 말 한마디뿐이었지만 그 친구는 참 고마워라 한다.

늘 든든한 친구이다. 지역 대표로 의원선거에 출마도 했던 친구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엄마를 굳세게 모시고 살며 서로 니들 엄마 우리 엄마 하며 이야기 나누던 친구 동창회에 나가면 담배 곳간 이야기를 말하며 나를 놀려대도 밉지 않은 친구이다.

고향 까마귀 금옥이는 요즘 애칭이 바뀌었다. 막걸리 한잔 이 가란다.. 막걸리 참 정겨운 우리 고유의 술이다. 잔치 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은 막걸리를 빚는다. 한 동안은 밀주라 해 감춰놓고 먹기도 한 우리 서민들의 정을 나누는 막걸리 한잔에는 애환과 나눔의 정이 가득 담긴 먹거리이다.

금옥이가 그 막걸리을 노래 부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는 고향으로 숙여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연어가 온갖 힘을 다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듯 우리는 늘 마음 한 곳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늘 고향소식을 예쁜 나뭇잎에 써 들려주는 고향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내 친구 고향 까마귀 금옥이는 나의 절친이다.

어제는 벌초 이야기를 꺼낸다. 고향에 들르면 그래도 찾아보고 싶은 친구가 있고 차 한잔 마실수 있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가 있는 고향 지킴이 그곳에는 까만 까마귀가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며 전화선 타고 들려오는 그날의 골말에는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없어라고 전해준다. 그래도 조심해라 뒷산이 밀려내려 오면 큰일 난다.. 걱정 말아라 끄떡없다고 안심을 심어주는 내 고향에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고향 까마귀 금옥이가 잘 살고 있다.

 

 

해무리가 예쁘게 진 날

계집애 머스매들은

족대를 들고 물가를 누빈다.

눈먼 물고기가 들어온다

 

물텅벙 놀이에 빠졌다

더 많이 모여든 사내아이들

수염 난 할아버지도

반들반들한 신사도

수다쟁이 아줌마도 다 잡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잔잔한 어둠이 내린 밤

물고기들은 빨간 화장을 한다

 

서릿발이 내려앉은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

둥글둥글 돌기 시작한다

술래를 잡고 도망가고 그러기를 몇 바퀴

금옥이가 잡혔다

 

벌금 만원 내려했더니

잘 내더니..

짓궂은 녀석이 또 금옥이

뒤에 수건을 놓았다

잡혔다....

또 내려니 억울한가 보다

우리다 고발한단다...

하마터면 우리 다 공범되어  잡혀갈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