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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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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자 2022. 10. 2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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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장가(코고는) 소리는 명품입니다

 

얇은 달님이 빛을 내어주는 한밤중에 망치 소리가 들립니다.

두 보물은 쌔근쌔근 잠이 들고 한밤에 거푸집을 뜯어내고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두 사람은 소곤소곤 현장에서 남은 레미콘을 받아 싼값에 축대 벽 쌓기 공사를 합니다.

망치 소리는 끝이 나고 작은 포장마차에 둘이 나란히 앉아 칼국수 한 그릇에 소주 한잔 비우고

자리를 일어나는 일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두 사람은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가 점집에 가더니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고 그러셨는데

어느날 우연히 들린 무속인이 보고 하는 말 친구처럼 연인처럼 잘 만났다고 하던 말 생각나지요. 우리 딸을 보더니 복덩이라고도 해서 둘이 마주보고 웃기도 했어요.

까만 밤 풀벌레들이 목청 높여 노래 부르는 늦은 밤 작은 등 켜놓고 책을 읽다가 당신 코 고는 소리가 천장을 뚥어 하늘에 별이 보이기에 함께 장단 맞춰 봅니다.

32년을 함께한 나날들 속에 제일로 생각난 부분을 사진첩을 뒤지듯 넘기다가 꺼내봤습니다, 그날 당신과 먹었던 그 포장마차의 칼국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추억 소환을 일 번으로 해봤지요

기억나지요? 여보

 

오늘은 지난 일들에 대한 추억들을 사진첩 넘기듯 하나둘 넘겨보려 해요

딸이 태어나던 해는 유난히도 더 추웠나 봅니다.

연탄불은 겨우 한 사람만 잘 수 있는 넓이만 따뜻이 데워주고 벽돌 한 장으로 돌린 벽 사이로 합판 한 장으로 천장을 친 틈 사이로 바람이 내려와 이불 속은 따뜻하지만, 코는 시러 이불로 얼굴을 가렸던 추운 겨울날 아침에 방안에 두었던 걸레는 바짝 얼어 설거덕 설거덕 소리를 내곤 했어요

품 안에 꼭 오 옥 안고 울다 지쳐 잠든 딸은 쌔근쌔근 잘도 자는데 옆에서 아기 운다고 역정 내던 당신은 많이도 미웠지요. 새벽녘이 다 되어 잠든 아기 눕히고 토끼잠 자고 새벽에 비몽사몽 비실대며 아침밥 차려 출근하고 나면 다시 기저귀 빨고 우유병 소독한다고 가스 불 위에 얹어 놓고 깜빡 잠들어 집안이 새까맣게 변해도 몰랐던 날 옆집 언니가 오는 터에 십년감수 했던 그 날도.

작은 집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야 하고 재래식이라 아기들은 오리 변기에 앉혀 용변을 보고 흙 놀이를 일삼아서 하던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비록 허름해도 아기들 층간소음으로 인해 구속은 당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래서 난 아버님께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모셨는가 싶습니다.

아버님 이발하는 날이면 항상 맥주를 먼저 준비해 놓았지요. 아버님은 이발 전용미용사는 나는 머리를 감겨 드리고 옷까지 갈아입혀 드리고 나서 좋아하시는 만두 쪄서 드리면 시원하다. 시며 맥주를 마십니다. 때국놈들은 이래서 못 쓰고 왜놈들은 이래서 못써 하시며 당신 군대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그리 신나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아버님과 나와의 그리 재미있던 추억이 있다는 것을…….

 

열심히 살아온 당신과 나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던 나

피곤해 잠이 들면 지붕이 들썩들썩하도록 코를 골았지요. 처음엔 잠을 잘 못 이뤘지만, 그것이 자장가 소리가 되었지요

아이들의 눈에는 언제나 당신은 일개미였습니다.

어느 여름방학에는 방학 숙제를 하던 딸이 개미 네 마리를 그리더니 개미 가족이라는 제목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대장 개미라 젤로 크게 그리고 아래 조그맣게 일개미라고 적었지요. 그날서부터 우리 집 가족을 대표로 하는 것은 개미 가족이었습니다.

청소기 청소를 하면서 아들을 생각합니다. 군대 영장 받아놓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엄마 청소기 사 준다고 해 안 사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사서 매고 올라오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얼마나 됐나 하고 생각해 보니 벌써 십 년 전의 일이었지요.

자식들은 다 성장해 이젠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아들이 조금씩 해내고 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에 나오는 우양우 변호사가 마지막 장면에 느낀 그 뿌듯함 그 느낌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큰 행복을 찾으려면 어쩌면 불만투성이 더 많겠지만 작은 소소한 행복을 찾으니 내가 사는 이곳이 지상의 낙원이었습니다.

항상 당신한테 고마워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고 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나의 기도 제목은 지금처럼만입니다.

안정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여태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일을 벌여 다소 많은 투정을 해서 미안하기는 하고 일할 수 있는 나이를 더 늘어났지만 어찌하겠어요. 일단 벌어진 일이니 수습해야 할 수밖에

든든한 아들 딸이 있으니 당신 어깨가 덜 무겁겠지요.

잘해 냅시다. 건강만 하면 모든 것은 할 수 있으니 당신은 잘해 낼 겁니다.

당신을 만나 살아온 지나간 그 세월을 다 합쳐보면 헬렌 켈러가 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생애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요. 지금 당신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입꼬리는 양쪽으로 올라가고 있지요.

집보다 큰 차를 운전하는 당신의 그 수고로움에 감사하며 언제나 늘 웃음꽃이 외면하지 못하게 행복의 여신을 옆에 두고 남은 생도 즐겁게 살아봅시다.

오늘도 주적주적 비가 내립니다.

여전히 당신은 차를 운전하며 건설현장을 찾아가고 있겠지요

집 앞에 우뚝 선 건물은 앞 동네를 다 가려서 먼 산만 보이네요. 비온뒤라 운무가 하얗게 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위만 바라보면 쫓기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아래만 바라보자 했던 그것도 오늘은 참 모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