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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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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자 2021. 10. 3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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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연탄의 속삭임

 

뜨거운 여름날

검둥이가 흰나비 되도록 붉은

열기로 밤을 태우고 파아란 화장을 했다

그녀는 조그만 방으로  

데려가더니 말없이 나갔다

붉은 고추가 채반 위에 가득가득

다시 돌아온 그녀는 나를 힐끔 보더니

한참을 머물러 있다가 황급히

기침을 하며 나갔다.  

 

 

기력이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리지는

않는데 

그녀가 미쳤다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어

헛소리를 하며 돌아다닌다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지

온 힘을 다해 소리 질렀는데

그녀는 못 알아 들었다네

단단한 내게는 독한 슬픈 냄새가 나   

 

내 몸이 붉게 달아올라 따뜻한 열기를 내며

그들을 안을 수 있는 것에 흥분을 하지

행복해하며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 것도 알아.

따뜻한 훈기 넣어주고 구멍이 숭숭 난 채로

담 모퉁이에 버려져도 나는 행복해 

 

나그네새

 

한젓한 신작로 길

노란 이층 집 대문에는

하얀 사슬이 걸려있다.

 

기와집 추녀 밑에 

단단히도 잘 지어진

둥근 사발이 서너 개

얌전하고 단정한 제비 부인이

잘 다져 지은 아담한 토담집

 

부인의 노랫소리에 덜컹 내준 집터

집주인 오늘도 함박웃음 

재롱 쟁이에 마음 빼앗기고

너털웃음 짓네

 

덩그러니  남아있는

둥근 사발 가득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텅 빈 토담집을 올려다본다

 

물 깊은 샘물 그리고 포도

아버지는 조선낫을 갈아
새끼줄로 돌돌 말아 놓고
작은 봇짐을 꾸린다

이슬이 머금은 이른 새벽
앞마당에 큰 머슴이
왕방울 눈을 껌벅이며
배웅 인사를 한다.

흙먼지 날리며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텅 빈 버스 정류장
기린 목이 하늘에 닿는다.

땅거미가 마을을 덮었다
집집마다 등불이 켜지면
동네 어귀
아버지의 긴 그림자

두레박 속에는 알이 굵은 포도
한송이가 활짝 웃고 있다
샘 물안에 새 두레박이 달리겠지
포도알이 입안에서 통통 터진다

 

 

 

 

어르신이 지나가시길래 반갑게 인사를 하며

제비집 사진 찍는다고 하니 

제비가 있을 때 찍어야지 하신다.

봄에 다시 와야겠어요 라고 살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