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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김용자 2025. 2. 4. 20:36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詩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오는날만나자 #정호승